대학 원서/에세이 컨설팅 Before & After 샘플

아이비리그: University of Pennsylvania (유펜) - Wharton 경영대 합격 에세이

2013년 입시 시즌동안 베테랑스 교육연구소의 Essay Specialist 와 함께 작성하여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University of Pennsylvania, Wharton Business School합격한 학생의 샘플 'Before & After' 에세이 입니다.

Before 은 해당 학생이 컨설팅을 받기 전의 에세이고, After 은 컨설팅을 받은 후, 대학에 제출한 최종 에세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에세이 주제 (Prompt):

Ben Franklin once said, "All mankind is divided into three classes: those that are immovable, those that are movable, and those that move." Which are you?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인류는 3가지로 분류된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 당신은 이 셋 중, 어디에 분류되는가?

Before <영어 원본>

    In Sunday afternoon, there was a family resting in their house, just like a normal weekend. ’Mom and dad, I want to study in America’ said a boy. He showed the magazine that has information about the exchange student program. The only reason that he wanted to go was to have more experience. The decision that he made changed huge part of his life. Does he know what will happen? I do not think so but he would do same thing although he know his future. 

(Hook Paragraph: 굉장히 어색하고 억지로 쓴 듯한 느낌을 줍니다. 에세이의 문맥상 생략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생략하는 것이 더 깔끔한 에세이를 구성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What would you do if you will not afraid of?’ I moved a lot during my whole school year. By the time I decide to study in United States of America, I already moved 6 schools and 4 different places include the countries that I lived. I had to move because of my father’s work. My parents wanted to work outside of the country, and my father was placed in different country. By the time when I first moved to China, I was only 8 and I knew nothing about Chinese or English. I was young, but my parents couldn’t focus on me because of my younger brother. I started to do my stuff by myself. After 4 years, when we moved to Korea, I had to adjust in the new environment and make new relationship. Since my parents knew as much as I know about the school, I grew to be independent. 

(매우 부적격한 토픽 초이스입니다. 타지로 가서 생활하며 배웠던 점에 대해 풀어 나갔으나, 미국의 수많은 유학생들이 너무나도 자주 쓰는, generic (무미건조) 한 토픽입니다. 물론 토픽이 generic 하다고 ‘안 좋은 에세이’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나, generic 한 토픽을 커버해줄 만한 독창적인 conclusion 을 이끌어 내지 못하였기에, 해당 에세이는 ‘본인만의 특별한’ 에세이라기보다는, ‘그 누구나 상상 및 경험했을 수 있는’ 매우 단조로운 에세이라 할 수 있습니다.)

    ‘There is no waste experience’ I figured it out by looking back of myself, that I become a different person every time when I experienced a new thing. Whatever the process was, the result was positive. Not only to have more memories, had I had more immunity on that kind of experience that I undergo. I knew the answers what others might struggle. So in age of 15, I decided to study in America. It was the first time to decide where I want to live, and what I want to do. I knew that every experience is useful, and it will improve me as a better person. By adapting to live in different places, I believed myself that I know how to get over the risk when I make new choices. 

(에세이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한 가지의 메인 토픽 - 타지에서의 생활 및 자신에게 끼친 영향 - 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었으나, 각 Paragraph 마다 포함되어 있는 Sub-topic 이 굉장히 어지럽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생략해야 조금 더 일관적인 에세이가 될지 잘 숙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브 토픽에 맞춘 문장 정리가 굉장히 취약합니다. 또한 한 paragraph 에서 다음 paragraph 로 넘어갈 때 transition 이 매우 부자연스러워 한 서브 토픽에서 다음 서브 토픽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테크닉 연습이 필요합니다.)

    Today’s me is formed by a 17 years of experiences that I had. To live in the different place was hard and it was hard to see the relationship that I made on the previous place is getting weaker. But now I feel thankful to my parents to letting me live indifferent places, and now I become a person who encourages trying more things. Yes. You will have something to give up doing something new. For me, it was the grade. I couldn’t focus on my school when I first came to new high school, and I nearly have no advanced class credits such as AP because the schools that I was belong to didn’t have a lot of AP classes. I also worried about the grade when I decide to study in America, but I thought the experience that I will have will be more variable than the grade. 

(현재 학생의 에세이를 읽어보았을 때, 기초 문법 에러를 포함하여 기본적인 에세이 작성법조차 잘 숙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적절한 토픽 초이스로 인해 에세이가 너무 단조롭게 느껴지며, 입학 사정관이 끝까지 읽지 않고 중도 폐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체적인 에세이를 보았을 때 아이디어가 뒤죽박죽 엉켜있고, 부적합한 결론 [conclusion]을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입니다.)

    Who in my age lived in 3 different countries and 3 different schools during their high school year? I know it’s very few and this make myself special. Now I see the world in wider view than any other else with wider possibilities to think about my future. As I learn from the mistake and improve from it, large experiences that I have is my identity which makes different me compare to others.

(본인의 에세이 Conclusion 문단에서 “I know it’s very few and this make myself special”이라고 작성하였습니다. 대학 에세이 내에서 본인 스스로 “나는 특별하다”라고 쓰는 것은 금기 중에 금기이며, 절대로 하면 안 될 부분입니다. “지원자가 특별하다"는 것은 작성자 스스로 말 하는 것이 아닌, 해당 에세이를 읽고 있는 입학 사정관이 직접 “느껴야” 하는 부분이며, 대학 에세이 내에서는 항상 “겸손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학생의 conclusion 문단이 전부 “나는 특별하다”에 맞추어져 있는 만큼, 전부 갈아 엎기를 적극 권유합니다.)

<한글 번역본 - 아래 클릭>

VIEW/OPEN

    평소와 같은 일요일 저녁, 한 가족이 집에 둘러 앉아있었다. ‘엄마, 아빠, 나 미국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라고 남자 아이가 말하였다. 그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설명되어 있는 잡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가고자 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더 많은 경험이였다. 그 결정은 내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그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는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두렵지 않다면 너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내 학업 기간동안 많이 이주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을 때 까지 4개 국가 및 6개 학교를 옮겨 다녔었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내 아버지는 한국 밖에서 일을 하기를 원했고, 그에 맞게 외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중국으로 이주했을 무렵, 나는 오직 8살 이였고 영어나 중국어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나는 어렸고, 내 부모님들은 내 동생 때문에 나에게 집중해서 보살핌을 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4년 이후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했다. 내 부모님의 학교에 대한 지식이 나와 동등했기에, 나는 독립적으로 자랐다.

    값지지 않은 경험은 없다. 돌이켜 보았을 때,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마다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진행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항상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심고 싶었고, 새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엇기에 나는 15살이라는 나이에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 것은 처음으로 내 스스로 살고싶은 곳 과 하고싶은 것을 결정했던 시기다. 나는 모든 경험이 쓸모가 있다는 걸 알았고, 이 경험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새로운 환경들에 적응해 나가면서, 나는 내 스스로가 새로운 선택을 함으로서 따라오는 리스크를 감안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오늘의 나는 17년의 내가 겪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 졌다. 새로운 거주지에 사는 것과, 이전 거주지에서 맺은 인연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며, 새로운 것을 즐겁게 시도하는 내가 되었다. 이건 맞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나에게는 포기해야 할 것이 내 내신이였다. 내가 처음 고등학교에 왔을 때 학업에 집중하지 못 하였고, 학교에서 AP 과목을 많이 제공하지 않아서 AP 과정을 크게 많이 수료하지 못 했다. 비록 지금은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내신을 많이 올릴 수 있었고 AP 과정을 많이 수료할 수 있었으나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는 내신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컸다. 그래도 나는 내신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의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의 어떤 누군가가 4개의 다른 국가에서 6개의 다른 학교 생활을 경험했나? 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를 경험했다고 알고 있고, 이 점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나는 이제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더 넓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 누구보다도 더 넓은 가능성이 있다. 내가 실수를 통해 배우는 타입이니 만큼, 이런 큰 경험이 나의 신분이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더 뛰어나게 만드는 요소이다.

After <영어 원본>

    A classroom filled with a teacher and about 30 students. The teacher asks a question, and a boy raises his hand to answer it. The moment he stands up, someone in the room shouts out “Go back to frickin’ Asia, chink!” A brief awkwardness… followed by a burst of laughter. The poor boy cannot fathom the motive behind the villainous act, and crashes into a state of silence. So the story ends. A boy is hurt, others are pleased.

(좋은 예의 "상황 재연" 방식의 hook 입니다. 적절한 디테일을 통해 이 hook 을 읽는 사람들이 아주 쉽게 머릿속에 그때 당시 상황을 쉽게 재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Reader 들이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게 함으로서, 에세이를 ‘더 읽고싶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Before coming to the US and becoming naturalized, I had studied abroad in numerous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Kingdom. From the experiences, I could extract one sad but undeniable truth; in a white- oriented society, people of color are discriminated against. Unfortunately, that fact did not occur to me during the early phase of my life abroad, for I was too young and inexperienced to perceive that reality.

    The particular memory of go-back-to-frickin-Asia was from a small boarding school in London about seven years ago, and, as one may suspect, I was completely shocked. I could not comprehend what I did to provoke him nor why I had to be treated in such way. With my limited understanding of the cruel reality, I sought to battle the racial dilemma through embellishing my own cultural identity among the majority. The result, absolutely disastrous. People suppressed and mocked me for “being so Asian.”

(위 두 Paragraph는 에세이 초반에 쓴 hook을 매우 잘 풀어나간 예 입니다. 디테일한 Flashback을 이용한 hook을 쓴 후, 그에 관련된 토픽 및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조리있게 설명했습니다.)

    I first condemned the world for its unfairness and hostility. But amid the chaos, I slowly realized that simply complaining is futile; that if I disliked something, I had to either change it or change myself. I concluded that I do not have enough resource to alter the world in this stage of my life, and that changing myself was the more viable option for now.

(입학사정관들이 매우 좋아할 부분입니다. 본인의 성향과 철학을 잘 표현하였으며, 중간에 ‘갑자기 넣은 듯 한’ 느낌이 나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에세이에 녹아들게 했습니다.)

    With that decision engraved in my mind, I came to the US after a six months stay in London. Unlike what I did there, I added versatility to my cultural identity and allowed myself to assimilate to the new culture. As I hoped, I could form a smoother relationship with people here; they actually accepted me and treated me with the respect that I was not accustomed to before I opened myself to change.

(본인이 겪은 시련을 통해 느꼈던 점을 성공적으로 실행에 옮겼다는 점을 잘 표현 했습니다. 에세이 주제에 알맞게, 자신이 ‘움직이는 사람’들 중 하나인 것을 보여주죠.)

    Now that I have successfully solved my racial dilemma through changing myself, I want to solve that of other Asians in white-oriented societies through changing the world. In school, I still see many Asian- Americans troubling themselves to get accepted, and that breaks my heart, for I understand how it feels to be treated as a minority.

(이 paragraph에서부터 에세이의 토픽이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썼지만, 이 문단부터는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의 생각, 그리고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에 대한 사상을 잘 표현합니다.)

    As stated i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 agree “that all [people] are created equal.” Given that Benjamin Franklin signed the document, I can reasonably conclude that Franklin also concurred with that idea. With the help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d its philosophy of Franklin, I can envision myself achieving a status as a global leader, playing a great role in showing that Asians are equally as great as any other race in the world.

(학생의 센스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죠. 벤자민 프랭클린의 역사적 사실과 그의 사상, 그리고 그가 유펜을 설립했다는 점을 잘 엮어서 표현합니다.본 문단에서는 학생 본인의 사상 외에도, 학생이 유펜의 기본적인 역사와 미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센스있게 보여줍니다.)

    I move.

(매우 간결하고 강렬한 conclusion 입니다. 통상적인 '설명 위주'의 에세이 결론 문단들과 반대로, 읽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한글 번역본 - 아래 클릭>

VIEW/OPEN

    약 30명 정도의 학생들과 교사가 있는 긴장감 넘치는 교실을 상상해 보자. 교사가 질문을 하나 하고, 한 조용한 남자아이가 대답하기 위해 손을 든다. 그 아이가 발표하기 위해 일어서는 즉시, 교실 내의 누군가가 ‘거지같은 아시아로 돌아가 원숭이 놈아!’ 라고 소리친다. 잠깐 동안의 조용한 침묵... 이후 큰 비웃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아이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길래 이러한 멸시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깊고 암울한 침묵 속에 빠진다. 이렇게 스토리는 끝나게 된다. 한 아이는 상처 받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즐겁다.

    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넘어와서 미국 국적으로 귀화되기 전, 나는 영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귀중한 경험에서 매우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추출할 수 있었다: 바로, 백인 위주의 사회 내에서 유색인종은 언제나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는 점 이다. 불행히도 나는 너무나도 어리고 미숙 했기 때문에 유학 초기 기간동안 이 불편한 진실을 미리 깨우칠 수 없었다.

    위에 기재한 ‘거지같은 아시아로 돌아가!’ 시나리오는 사실 7년 전, 내가 런던의 조그마한 보딩스쿨을 다니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읽는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다시피, 나는 멸시적인 욕설을 들었을 때 매우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어떠한 잘못을 했길래 그러한 멸시를 받아야 했는가? 백인 위주 사회의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가혹한 진실을 그때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 했기에, 나는 백인 문화의 중심에서 내 고유 문화인 ‘한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내 딜레마를 해결하려 시도했고, 그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아시아인 같다’고 더 놀리고 배제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국 사회 내에서 동남아인들이 ‘동남아의 문화는 한국의 문화보다 뛰어나다’ 라고 강조하는 것 과 비슷한 격이 되버린 셈이니까.)

    나는 초기에 사회의 불합리함과 적대감을 이유로 이 세상을 경멸했다. 그러나 온 주변이 혼돈으로 에워싸일 때 쯔음, 나는 점차 그저 불평만 하는 것은 헛되고 소용 없는 짓 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바꾸던가, 내 스스로를 바꾼던가 둘 중에 한 가지를 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으며, 그 시점에서는 내 스스로가 세상을 바꿀 아무런 힘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내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 과감히 결론을 지었다.

    런던에서의 암흑같던 6개월 이후, 그 결정 사항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각인한 채 미국으로 넘어와 유학을 하게 되었다. 런던에서의 ‘나’와 다르게, 미국에서의 ‘나’에게는 문화 정체성의 유연성을 부가하였고, 내 스스로를 새로운 문화에 녹아 들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내가 바랬던 것 처럼,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부드러운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 스스로를 바꾸기 전까지 겪어보지 못 했던 존중과 함께 나를 대해 주었고, 비로서 타 문화에 모나지 않게 한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내 자신의 인종 딜레마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지금, 나는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유색인종들의 딜레마를 해결 해주고 싶다. 아직까지도 내 고등학교 에서는 많은 미국계 아시아인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고, 내 스스로도 소수 인종으로 차별 취급을 당했던 똑같은 경험이 있기에, 이 들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하다.

    미국의 독립 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라고 명시된 것 처럼, 나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설립자인 벤자민 프랭클린도 독립 선언문에 서명을 한 것에 빗대어 보아, 프랭클린도 해당 구절에 동의하였다고 합리적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철학이 녹아있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도움을 통해 내 스스로가 세계적인 선도자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비젼을 상상을 할 수 있고, 내 비젼이 사실화 되었을 때, 나의 위치와 노력이 인종의 ‘색’과 무관하게 그 어느 누구나 ‘평등’하게 대단하다는 점을 널리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움직인다.